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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림프종) 투병기/림프종 진단까지의 기록

31살, 암 환자가 되었다. (림프종 판정까지의 기록 정리)

by 하늘을 헤엄치는 문어 2019. 11. 4.





"골수까지 전이된 악성 림프종 4기입니다."

31살인 난 의사의 말 한마디로 암 환자가 되었다.






2019년 8월 중순.

우연히 발견한 사타구니의 혹.


 결혼을 한지 3년이 되어가면서 임신을 준비하던 어느 날. 어쩌다가 좌측 사타구니에 이상한 혹을 발견했다. 겉으로는 평평해서 혹이 있다는 티도 나지 않고 통증도 없고, 만져도 그냥 내 살을 만지는 것 마냥 아무런 느낌이 없는, 직접 그 부분을 만져야지만 존재를 알 수 있는 이 혹. 원래 있었는데 내가 몰랐던 것인지, 아니면 없는데 생긴 것인지 몰라서 신랑에게도 물어보니 없었는데 생긴 것 같다고 말하는 내 반쪽. 검색을 해보니 질염이나 서혜부 임파선염이라면서 산부인과나 외과를 가보라는 글들이 많이 나온다. 그래서 먼저 산부인과를 방문했다. 방문하니 생각보다 혹이 커서 산부인과에서 다룰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외과를 가보라고 권유를 받았다. 

 이 즈음에 허리가 아파서 정형외과를 방문하려 했기에 겸사겸사 정형외과에 갔다. (사실 정형외과와 외과의 차이를 잘 모르기도 했었다.) 혹이 난 부위를 초음파를 해보던 정형외과 의사. 동그란게 두개가 나란히 있었다. 검은색의 동그라미는 팔딱팔딱 뛰고 있었고 하얀색의 동그라미는 그냥 하얀 동그라미였다. 검은색은 동맥(정맥이였나?)이고 하얀게 혹인데, 아마 지방종이거나 임파선염일거라고 한다. 경계가 뚜렷한 것으로 보아 아마 나쁜 종양은 아니라면서 이건 외과 분야이지만 원하면 본인이 제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잠시 고민을 했지만 그래도 이건 정형외과보다는 외과에서 다뤄야 할 것 같고, 이 당시 임신 가능성이 있었기에 그냥 나왔다. 잘했다 과거의 나.




2019년 9월 2일 월요일.

외과에 방문하다.


동네에 있는 대학 병원에 있는 외과에 오빠랑 같이 무작정 찾아갔다. 별도의 초음파는 없고 그냥 손으로 혹이 난 주변을 만져보고는 CT를 촬영해야 뭔지 파악이 가능할 것 같다고 말한다. 이때까지도 난 아직 생리를 하기 전이었기에 임신 가능성이 있었다. 생리 예정일이 추석즈음이여서 의사와 상담 후 추석이 지난 날로 CT예약을 잡고 왔다. 임신이면 예약을 취소하고 임신이 아니라면 예정대로 방문해서 CT를 촬영하는 것으로. 이 사실들을 양가에 괜히 얘기했다가는 걱정만 끼칠 것 같아 오빠와 나는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비밀로 하기로 했다.

 평소 병원에 크게 갈 일이 없었던지라 CT를 촬영한다니 뭔가 일이 점점 커지는 것 같았다. 내 인생의 첫 CT인지라 잘 몰라서 이것저것 검색하다가 촬영을 위해 조영제를 투입한다는데 이 조영제가 부작용이 있고 그 중에는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는 말에 겁을 살짝 먹었다가 바쁜 업무에 치이고 추석을 보내느라 잊고 지냈다.




2019년 9월 16일 월요일.

내 인생 첫 CT 촬영.


 임신을 시도하면 늘 임신이길 바라던 오빠는 이번 만큼은 임신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하늘이 이 바람을 들었는지 조금 늦었지만 생리가 시작되면서 임신의 가능성은 없어졌다. 그래서 예정대로 병원에 방문하여 CT를 촬영하였다. 전날 밤 12시 이후로 물을 포함한 금식을 한 후 유난히 겁이 많은 날 위해 오빠와 같이 병원에 방문.

 조영제 투입을 위해 팔에 주사를 꽂아 놓고 내 순서를 기다리는데 뒤에 앉은 사람 3명이 서로 일행인지 큰소리로 얘길 나눈다. 예전에 본인은 뇌 CT를 찍으려는데 조영제를 투입했더니 머리가 아파서 혼났다는 얘길 하는데 그 얘길 들으며 나의 긴장은 한층 높아졌다.

 드디어 내 이름이 불려지고, 안에 들어가서 TV에서 많이 봤던 원형의 기계에 누워서 지시 하에 팔을 올리고 숨을 쉬고 멈추는 연습을 하고는 촬영에 들어간다. 기계 안내에 따라 숨을 쉬었다 멈추기를 한두번 반복하고는 사람이 들어온다. '조영제 들어갈게요~ 투입되면 살짝 더워질 수 있어요.', '네.' 대답을 하고는 다시 기계 안내에 따라 숨을 쉬고 멈추고를 한다. 어느 순간부터 어디서부터 시작된건지 모르겠지만 몸이 순서대로 뜨거워지는 느낌이 든다. 다른 인터넷에서 본 말을 끌어온다면 정말 딱 이 느낌이다. 잠을 자다가 오줌 싼 느낌. 어린 시절 잠결에 이불에 오줌을 쌀 때 느껴지는 아래에서의 뜨끈미지근한 느낌과 소변이 나오면서 속옷과 옷, 이불이 뜨끈하게 점점 젖어가는 그 느낌! 조영제가 들어가고 몸이 뜨거워지는게 정말 딱 그 느낌이었다. 그렇게 '어? 나도 모르게 소변을 봤나?' 하는 의심이 잠깐 들다가 점점 그 느낌은 사라지면서 검사 종료. 인터넷에서 본 온갖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기계에서 내려와 주사실에서 주사를 제거하고는 예약을 잡고 병원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오빠와 함께 순두부찌개를 먹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2019년 9월 26일 목요일.

CT결과...?


 계속 오빠가 회사를 빠졌던 지라 이날은 혼자 병원에 갔다. 진료실에 들어가니 오늘은 남편과 같이 안 왔냐고 묻는다. 오늘은 혼자 왔다며 자리에 앉아서는 의사와 같이 촬영한 복부 CT를 보면서 설명을 들었다. 하얀 작은 점들이 림프 같은 것들인데 혹이 난 부위에 유난히 림프가 크게 나타난 것으로 보여진다. 이 혹의 크기는 2.8cm로 작은 크기는 아니란다. 즉 림프절이 비대해졌는데 이게 정확이 무엇인지는 조직 검사를 해야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의사. 조직 검사는 얇고 긴 바늘로 혹이 나 부위를 찔러서 바늘에 묻어 나오는 조직으로 검사(알아보니 이를 세침검사라고 부르는 것 같다.)를 하는데 이게 단순 염증이거나 림프종 혹은 림포마로 판단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조직검사를 하게 되면 아무래도 움직이면 안되니 1박 2일의 입원을 하면서 진행이 된다고 한다. 이렇게 조직검사를 하거나 그 혹을 제거해서 검사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혹을 제거하면 림프의 일부를 절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변에 림프액이 나와서 젖을수도 있고 하는 등 불편함이 있기 때문에 권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무튼 이러한 검사로 림프종이나 림포마로 판단이 내려지면 그에 따른 치료를 해야 하는데 이 병원에는 장비가 없으니 주변에 있는 다른 대학 병원이나 서울로 병원을 옮겨야 한다고 말을 한다. 이러한 설명으로 나에게 주어진 두 가지의 선택지. 이곳에서 조직 검사까지 진행을 하고 결과에 따라 병원을 옮길 것인가, 아니면 CT자료와 의뢰서를 들고 병원을 옮겨서 검사를 진행을 할 것인가. 남편과 상의를 해보고 연락을 주라고 하기에 수납을 하고 나왔다.

 이때까지 나는 림프종이 뭔지 몰랐다. 그냥 단순 질병인 줄 알고 아무렇지 않게 버스를 타러 가는데 마침 결려온 오빠의 전화. 병원에서 들을 이야기들을 얘기하고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어디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럼 병원을 옮기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의뢰서와 CT촬영 자료를 갖고 나왔다.

 버스를 타서는 서류를 꺼내보았다. 주진단은 상세불명의 림프절비대(진단코드 R599), 의증으로는 림프종 NOS(진단코드 C859). 아무 생각 없이 그렇구나 하며 있는데 또다시 오빠한테서 전화가 온다. 힘없는 목소리로 림프종이 암이라는 오빠의 말에 그제서야 지금 이 흐름이 뭔가 이상하구나를 느꼈다. 전화를 하면서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조직 검사를 해야 하는 것이라면 제대로 된 큰 병원을 가자라는 의견이 일치하여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오빠가 회사에 있는 친한 사람들과 얘기를 나눠보고는 우선 서울아산병원으로 가보기로 결정을 내린 우리. 난 집에 도착하자마자 병원에 전화해서 우여곡절 끝에 혈액내과 첫 방문 예약과 그에 대한 안내를 받았다.


 (이 내용은 예약 시 있었던 일화다.) 예약 상담을 하는데 병원 측과 많은 전화가 오갔다. 처음에는 대기가 길어서 내 번호를 남기고 끊었다가 기다려도 전화가 안 오길래 다시 전화를 걸어서 첫 상담(상담원A)을 받았다. 사타구니에 혹이 났다는 나의 말에 처음에는 피부과 진료를 얘기하는 것이 아닌가? 이 진료가 어느 분야인지 약간의 논쟁을 벌이다가 전화를 끊고 검색을 여기저기 해봤다. 그 사이에 병원에 번호를 남긴걸로 다른 상담사(상담원B)의 전화가 왔다. 내가 이러이러한 상황이고 자료와 의뢰서를 갖고 방문하려는데 어느과를 가야하는지 물으니 진단명을 알려달라고 한다. 그래서 알려주는데 문득 진단명보다는 진단코드가 낫지 않나 하는 생각에 진단 코드를 알려주겠다고 말하니 그럼 팩스로 의뢰서를 보내달라고 한다. 그럼 맞는 과를 찾아서 안내를 해주겠다고.

 집에는 팩스가 없다. 그래서 회사에 있는 오빠에게 사진을 찍어서 팩스 발송을 부탁했는데 여기에서도 문제가 발생한다. 뭐 때문인지 팩스가 발송되지 않는 것. 팩스로 헤매는 중에 피부과를 안내해줬던 상담사A에게서 전화가 왔다. 알아보니 혹의 크기에 따라서 피부과나 외과로 가야할 것 같다고. 그래서 현재 내 상황을 알려주었다. 이런저런 상황으로 팩스를 발송 중인데 팩스가 안간다고. 내 말을 듣고는 내부의 팩스가 꺼져 있는지 확인하고는 이상이 없다며 다른 팩스 번호를 안내해주며 병원 업무가 끝나는 6시 이전에는 보내줘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한다. 그 번호로도 오빠 회사에 있는 팩스로는 발송이 되지 않고...이때의 시간이 5시가 넘었다. 슬슬 초조해진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스마트폰으로 팩스를 보낼 수 있는 어플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당장 설치했다(참고로 어플명은 모바일팩스). 얼른 설치를 하고 뭔가 이것저것 설정을 하고(급하게 하느라 가입을 한건지 뭘 한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팩스를 겨우 보냈으나 그 시간이 5시 58분인가 59분인가... 결국 이 날의 병원 업무는 끝이 났고 다음날 아침 8시 반쯤인가 전화가 온다. 의뢰서를 보고 문의해보니 림프종이 의심되기 때문에 혈액내과로 방문을 해야한다는 안내를 받으며 가까운 시일내로 예약을 잡았다.



 

 




2019년 9월 30일 월요일.

서울아산병원 첫 방문.


 오빠의 연차는 곧 있을 이삿날을 위해 남긴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용되었다. 그래서 이날은 병원에 혼자 다녀왔다. 예약 시 설명해준 안내에 따라 동관에 있는 처음 오시는 분이라는 곳에서 접수를 하고 자료를 주고 예약한 시간에 서관 1층에 있는 혈액내과로 가라는 간단한 안내를 받았다. 미리 진료비를 계산하고 영수증과 예약증을 받고, 환자진료카드를 발급 받았고 병원에 대한 간단한 안내서를 주었다.

 대중교통으로 오느라 일찍 병원에 왔기에 예약한 시간까지 아직 1시간이 넘게 시간이 남았다. 그래서 먼저 내가 가야할 혈액내과가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파악하고는 병원 탐사를 하며 돌아다녔다. 점심시간이라 배도 고프고 해서 밖으로도 나가보고 지하로도 가보고. 지하에 가니 많은 식당들이 있었으나 시간이 시간인지라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냥 마늘빵 하나를 빵집에서 사와서는 서관 1층에 있는 의자 있는 곳에서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예약시간에 맞춰 혈액내과에 들어갔다. '예약하고 왔는데요' 말하며 결제하고 받은 종이를 보여주니 뭔가를 출력해 종이를 주면서 '저쪽에서 이 종이에 있는 바코드 찍고 혈압이랑 키, 몸무게 재고 몇 번 진료실 앞에서 기다리시다가 이름 뜨면 들어가세요' 라며 설명해준다. 어리버리를 장착하고는 슬금슬금 걸어가 혈압기와 키 측정하는 기구 앞에서 기웃기웃거렸다. 한참을 종이와 기계들을 보다가 종이에 있는 바코드는 빨간 불빛이 나는 곳에 대보니 띡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이름이 뜬다. 아 이거구나, 하며 키와 몸무게를 재고 혈압기에도 옆에 있는 곳에 바코드를 찍고 혈압을 재고는 그냥 교수 진료실 앞으로 갔다.

 멍하니 교수실 문 옆에 있는 진료 순서를 보며 기다리다가 내 이름이 뜬다. 안에 들어갔다. 의사가 혼자 모니터를 보며 말을 안하길래 내가 먼저 말을 했다.

 "사타구니에 혹이 만저져서 왔어요"

 "지금도 만저져요?"

 "네. 단단하고 통증은 없어요."

 "열나고 몸무게 빠지고 그런건 없죠?'

 "네"

 "일단 조직검사는 하긴 하셔야 겠네요"

 "아 그래요?"

 "지금 림프암이나 이런게 의심이 되어서 조직검사를 입원해서 하셔야 할 것 같구요. 입원 안내는 밖에 나가면 해줄거에요. 다른 병 없어요?"

 "네"

 "수술하신적도 없구요?"

 "네. 그런데 이게 CT상으로는 지방종인지 뭔지는 알 수 없는 건가요?"

 "네. CT상으로는 알 수 없고, 지방종 같지는 않아 보이는데요."

 "아 그런가요."

 "먹는 약도 없죠?"

 "네"

 "알겠습니다. 밖에서 한번 더 설명 들으실게요."

 이렇게 약 2분도 안되는 진료가 끝나고(...) 교수실 앞에 있는 곳에서 예약 안내를 받았다. 간단하게 안내 내용을 적어보자면 보통 조직 검사를 위해 3박 4일을 입원하지만 일정은 더 늘어날 수 있다. 조직 검사를 하기 하루 전에 입원을 해야 한다. 나의 경우는 일요일에 입원을 하고 월요일부터 본격적인 검사를 진행하게 될 것이라며 예약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는 나는 회사에 이러 이러한 상황으로 언제까지만 근무하고 아마 언제까지는 입원 예정이니 그 후에 복귀하게 되면 연락을 하겠다며 상황을 보고했다.




2019년 10월 13일~17일 (일요일~목요일).

4박 5일의 입원과 각종 검사.


 입원 전부터 고민이 되었다. 안내를 받은 대로라면 아마 최소 3박 4일은 입원을 해야 하는데 그 기간동안 오빠가 회사를 쭉 쉬기에는 무리인 것이다. 나는 입원이나 퇴원할 때 한번만 데리러 와주면 된다는 입장이지만 오빠는 날 병원에 혼자 두는게 걱정이 된다는 것이다. 또 우리가 집을 이번에 구매하면서 이사를 2주 앞둔 시점에 지금 사는 전셋집을 집주인이 내놨는데 갑작스럽게 손님이 집을 보러 오겠다며 일정이 꼬이는 점도 있었다. 아무튼 여러가지 일로 복잡해져 고민을 하다가 결국은 친정에만 이 상황을 알리기로 했다. 그리하여 입원 2일 전 친정에 전화하여 상황을 알렸고, 입원날은 오빠가 같이 와서 있고 다음날 엄마가 오면 바톤터치하여 퇴원까지는 엄마가 옆에 같이 있기로 했다.

 그렇게 각종 입원 준비물을 싸들고 일요일에 병원에 왔다. 입원 절차와 안내를 받고 검사 목록 안내와 이에 대한 동의서를 작성하고 병원 내부를 탐험하던 입원 첫날. (이 날 오빠와 있었던 웃겼던 일화들 절대 잊지 않으리..ㅎㅎ) 내가 입원하는 동안 검사한 항목들은 피검사, 심전도, 엑스레이, 목/흉부/복부 CT, PET, 골수검사, 폐기능 검사, 핵의학 심장기능 영상검사, 조직검사 등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따로 포스팅을 작성할 예정이다.

 3박 4일 예정이었던 입원은 서혜부에 있는 혹의 조직 검사를 위해서는 세침 검사가 아닌 혹을 떼어서 조직 검사를 해야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외과에서의 시술이 필요하고 이 일정을 잡는게 조금 늦어져서 하루 더 입원을 하게 되었다. 짧고도 긴 4박 5일은 내 인생 처음 겪는 일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결혼하면서 보기 힘든 엄마와 함께 하며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낸 날들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식이 아픔으로써 부모에게 가장 큰 불효를 했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기도 했다. 아직도 저녁 6시가 되어 병원이 끝나면 엄마와 함께 텅 빈 병원의 1층 내부를 산책하던게 생각난다.

 퇴원 날, 검사 결과를 듣는 날의 예약을 잡는데 엄마와 의견 충돌이 조금 있었다. 간호사가 안내한 날은 내가 이사하기 전인 날짜였는데 엄마는 하루라도 빨리 검사 결과를 듣자는 입장이었고 나는 이사 후에 결과를 듣자는 입장이었다. 간호사도 빨리 듣는게 좋지 않겠냐며 엄마를 두둔하여 엄마의 뜻대로 예약을 잡았으나 추후 결과가 나오지 않아 일정이 이사 후로 미뤄졌다. 일정 조정을 위한 안내 전화가 왔을 때 병원 측 말로는 왜 이렇게 결과듣는 날을 빨리 잡았냐고, 주말 포함해서 7일 내에는 결과가 안나온다며 우리에게 묻는다. 그래서 말했다. 교수가 그 날짜로 안내해준거라고. 아무튼 나는 내가 원하던대로 이뤄져서 좋았다.

 퇴원하고는 원래는 신혼집으로 갈 생각이었지만 엄마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일을 쉬고 친정집에 있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오빠의 의견을 조합하여 나온 결론은 이사도 준비해야 하니 주말까지만 친정에 있고 신혼집으로 내려가겠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일을 쉬겠다였다.




 

 




2019년 10월 30일 수요일.

암 환자가 되다.


 친정에서 보내다가 주말에 오빠가 데리러 왔고, 신혼집에 돌아와서는 일을 쉬면서 이사 준비를 하고, 무사히 이사까지 완료하며 오빠와 함께 우리의 첫 집 마련의 기쁨을 누리며 집 정리와 꾸미기에 정신이 없는 와중에 결과날이 다가왔다.

 오빠는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근무 중에 나와서는 나와 함께 결과를 들으러 서울아산병원에 갔다. 먼저 병원에 도착한 친정 부모님과 만나서는 서로의 근황을 물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는 결과가 좋게 나올거라며 좋게 생각을 하고 있었고 오빠도 약으로 치료 가능한 단순한 혹이면 좋겠다며 좋은 분위기를 냈지만 난 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난 느낌이 쎄한데? 입원기간동안 전문의가 '림프종 의심'이라면서 이것저것 안내하고 설명했는데 퇴원 2일전 부터는 '악성 림프종 의심'으로 단어를 바꿔서 안내했어. 이리 말하니 엄마는 그런 말 못 들었다며 PET에서 깨끗하다 그랬다고 별거 아닐거라고 말한다.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함께 대기를 하다가 차례가 되어 들어간 교수 진료실. 나는 의자에 앉고 엄마와 아빠, 오빠는 내 뒤에 서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짧고도 긴 침묵. 들어하고서 한동안 아무 말이 없던 교수가 조심히 입을 뗀다.

 "악성 림프종이에요. 골수까지 전이되어서 4기입니다."

이것 봐. 내가 느낌이 쎄하다고 했잖아. 미리 마음을 먹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예상을 하는 것과 판정을 받는건 다른 것인지 심란한건 어쩔 수 없다. 나는 나름 알아봤던 것들을 하나하나 물어봤다. 교수의 설명이 이어졌고 중간 중간 엄마의 울음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겨우 하나 질문하는 엄마의 목소리에는 물기가 가득했고 발병 원인을 묻는 아빠의 목소리에는 떨림이 묻어 나왔다. 그 시점에서 들을 수 있는 모든 설명을 듣고 교수실을 나오기 위해 의자에서 일어나 뒤를 돌아보니 엄마와 오빠는 울고 있었다. 엄마는 예상 했지만 오빠까지 울줄을 몰랐는데... 아빠는 오빠에게 더 물어볼거 없냐고 물었으나 오빠는 지금 머리가 하얘져서 아무 생각이 안난다고 말하며 방을 빠져나왔다. 대기실로 나와서 아빠는 어디론가 전화를 하러 나갔다가 들어오시고 난 왼쪽엔 울고 있는 오빠를 오른쪽엔 울고 있는 엄마를 두고 달랬다. 좌우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는 이 둘을 달래려니 참 어렵다. 엄마 한번 달래고 오빠 한번 달래고.


 결과는 이렇다. B세포 악성 림프종인데 이 악성 림프종에서도 순한 것과 독한 것이 있는데 나는 순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골수까지 전이되어서 4기이니 이게 마냥 좋지도 않고,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다고 한다. 정확한 병명을 물으니 여포성(소포성) 림프종이라고 한다. 이 림프종에도 두 가지가 있는데 구분 짓는게 의미가 없는 것이 치료 방식도 비슷하고 사용되는 약물도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림프종은 금방 심해지지도 않지만 금방 낫지도 않으며 아마 예후나 완치는 쏘쏘한 편인 것으로 난 이해를 했다. 예후가 어떤지를 묻는 나에게 적극적으로 치료를 하면 반수가 되거나 완치가 된다고만 말하는 의사(음..). 항암 치료를 해야하며 치료 방식에도 약한 것과 쎈 것이 있는데 아직 젊으니 쎈 치료 방식으로 적극적으로 해보는게 좋다고 한다. 이것 역시 나이 든 사람들도 잘 해내니 문제 없을 것이라며. 3주에 1번씩 외래로 병원에 와서 총 6번의 항암을 하게 될 것이데 보통 6개월이 걸리고 이때 머리가 빠지기도 할 것이라고 한다. 후에 깨끗해 지면 2년 동안 2달에 한번씩 주사를 맞으러 오게 될 것이고 후에 문제가 없으면 관해가 되었다가 5년동안 문제가 없다면 그 후에 완치가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아직 좀 헷갈리는게 그럼 6개월의 항암 치료 후 주사를 맞는 2년을 포함한 5년 뒤에 완치가 되는 것인지 아니면 2년의 유지치료기간을 포함해서 7년 뒤에 완치가 되는 것인지 아직 의문이다. 제대로 설명을 안해주신 듯... 항암 치료는 처음 할 때에는 부작용의 여부를 파악하며 치료를 하느라 5~7시간이 걸리고 그 후에는 시간이 점점 단축된다고 한다.  치료 후 임신에 대한 질문을 하니 산부인과와 상담을 받고 난자 채취의 방법들을 생각해보는게 좋을 것 같다며 산부인과의 예약과 항암 예약을 모두 잡아주었다.


 예약까지 모두 잡고 간호사가 준 산정특례(중증환자) 신청 서류를 받아 수납하는 곳에서 등록하여 입원 때부터 사용된 병원비의 2/3를 돌려받고 이 날의 수납을 완료하였다.

 미리 보험 담당자에게 연락해서 실비와 입원비, 혹여나 암일 경우 필요한 서류들의 목록을 받아놨었기에 관련된 자료들을 이 날 모두 받아왔다. 그러나 단 하나, 가장 중요한 조직 검사 결과지는 받지 못했다. 잠정적 진단이라는 문구 때문에 발급이 안된다는 건데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림프종 판정을 받고 중증환자 등록까지 했는데 조직 검사 결과는 아직 미확정이라고? 수납을 하고 부모님은 먼저 돌아가신지라 오빠랑 둘이 다시 진료과의 간호사에게 문의했다. 간호사의 답변으로는 알아보니 아직 조직 검사의 결과가 바뀔 가능성이 있고 이 결과를 최종적으로 알려면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교수님과의 면담을 원하냐고 묻길래 원한다고 하고 기다렸으나 예약 인원들이 꽤 있어서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 그냥 다음에 올 때 확인하기로 하고 그냥 돌아왔다. (이날 기다려서 다 마무리 했어야 했는데..)

 커피를 둘이 하나씩 사서는 차로 와서 오빠가 진정된 것을 확인하고는 집에 가는 길에 올랐다. 원래 오빠는 회사로 복귀해야 했으나 결과를 들은 회사의 친한 후임의 배려로 바로 퇴근. 운전 중간 중간 계속 눈물을 울리는 우리 오빠. 난 휴지를 오빠 손에 쥐어주었고 오빠는 눈물을 닦으며, 난 림사랑 카페의 글들을 보며 우리의 보금자리로 돌아왔다. 오빠를 달래기 위해 모자랑 예쁜 가발을 알아봐야겠다며 밝게 얘기하니 넌 왜이렇게 밝냐며 뭐라 그러는 오빠. 아니 그럼 뭐 울어야 하나? 어차피 닥친 일 우는 것보단 앞으로의 일들을 계획하는게 좋지 않나?

 집으로 돌아와 눈물이 끊이질 않는 오빠를 다독이는데 오빠는 말한다. 결과 듣는데 임신 걱정은 뭐하러 하냐고.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고. 임신보다는 너가 먼저라며 말하는 오빠. 임신을 준비하던 중에 이런 일이 발생한거라 만약을 대비해서 교수에게 물었던 건데 오빠는 그게 아니었나 보다.

 오빠가 진정이 되고서 우리는 시댁과 각자 주변 가까운 지인들에게 소식을 알렸다. 넘어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배는 고프니 보쌈을 시켜서 먹고 씻고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다. 결과를 듣고도 담담하게 있었던 나도 씻고서 자기 전에는 결국 눈물을 보였다. 오빠와 침대에서 마주 보고 앉아서는 서로 껴안으며 울었다. 죽기 싫다고. 아직 못해본게 너무 많다며. 한 3~5분 울었나? 그러곤 피곤했는지 둘 다 푹 잤다.




림프종 4기 판정 그 이후...


 회사에 결과를 얘기하면서 당분간은 일을 하지 않겠음을 알렸다. 친구들에게도 소식을 알렸다. 걱정과 응원을 해주는데 이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참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이것저것 알아보고 고민을 하다가 강남성모병원으로 자료를 갖고 옮기기로 결정을 내린다. 아무래도 림프종 쪽으로 유명한 의사가 몇 있는데 병원과 거리 기타 등등 여러가지 우리의 상황들을 따져보고 전원을 결정했다. 그리고 그에 따라 두 병원의 예약을 다시 잡았다. 부디 순조롭게 이뤄지길 바랄뿐.


 결과 다음날 아침에는 어머님과 도련님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예상치도 못하게 두분 다 전화를 하는 내내 울며 말씀하신다. 전날 그랬듯이 난 밝게 말하며 두 사람을 달래곤 전화를 끊었다. 그래도 참 감사하다. 두분 다 울거라고는 생각을 안했는데 날 위해서 이렇게 눈물을 흘려주시는 구나. 그만큼 날 정말 좋아해 주시는구나.


 하루는 약속을 잡고 집 앞 카페에서 내 보험 담당자를 만났다. 올해 초에 가입한 보험 증서 깜빡하고 못 받아서 이날 증권을 받았고, 실비와 입원비, 암 진단비에 필요한 서류들을 보여주면서 잘 챙긴게 맞는지, 혹은 더 준비할게 무엇인지 확인하였고, 림프종 4기이면 일반암인지, 가입한지 1년이 안되었는데 암 진단금이 전액 나오는게 맞는지, 납입면제 조건에 해당이 되는지 등등 확인할 것들을 확인했다. 담당자의 주변 암 환자의 얘기들을 들려주며 보통 첫 예약까지 큰 병원은 3개월이 걸리는데 나의 경우는 그래도 빠르게 검사를 진행한 것으로 보아 천운이라고 얘기해준다. 그러면서 크게 도와줄 수 있는건 없지만 내게 암과 관련해서 참고가 될만한 사이트 등을 알려주었다. 

 이상하게 오빠와 부모님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이날 담당자 앞에서는 왜 그렇게 무너지려 했는지 모르겠다. 얘기를 나누는 내내 아무렇지 않다가도 한번씩 표정이 일그러지거나 몸이 떨려오면서 심호흡을 하곤 했다. 실은 나도 서럽고 울고 싶었나 보다. 그러나 아마 알게 모르게 가족들 앞에서는 약한 모습이 보이고 싶지 않았나 보다. 다들 슬퍼하는데 나까지 슬퍼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했나 보다. 그래서 애써 괜찮은 모습으로 놀란 가족들을 위로 하려 했나 보다. 그런 내가 어찌 보면 나와는 상관 없는 남인 이 사람 앞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여기고는 나도 모르게 무장해제 했나 싶다. 담당자 앞에서 운 것은 아니지만 표정이 일그러지려 할 때마다 스스로 두 손으로 양 볼을 토닥이며 이야기를 이어갔었다. 담당자는 이번에 직급이 매니저가 되면서 밤 11시까지 퇴근을 안 하니 언제든 궁금한게 있으면 전화 주라는 말을 남기며 먼저 카페를 나갔다.

 혼자 이것저것 정리를 하고 인터넷을 하다가 중간중간 나도 모르게 울컥 올라온다. 그래서 카페 티슈를 몇 장 챙겨와 앉았다. 오전 근무만 하고 퇴근한다는 오빠의 연락을 밝게 한번 받고, 안부를 묻는 아버님의 연락을 또한번 밝게 받고. 그러다 다시 인터넷을 하다가 한번씩 올라오는 울컥거림에 한 손에 얼굴을 묻고 스스로를 달랬다.

 혼자 남겨진 시점에 카페에는 내 맞은편에 주부로 보이는 두 사람만이 서로 마주보며 남아 있었는데 나와 담당자의 이야기를 들은 것일까? 혼자 남겨지는 시점에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을 해보니 허지웅의 혈액암 투병기를 얘기하고 있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인터넷을 하다가 올라온 울컥거림에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또 들려온다. 울어? 어떡해 우나봐. 역시, 담당자와 얘기한 것을 들었나 보다.


 결과를 듣고 남은 평일 동안에 오빠는 회사의 배려로 오전 근무만 하고 퇴근했다. 또한 회사 후배들의 배려로 오빠의 근무 일부를 후배들이 대신 해주기로 했다. 참 고마운 사람들이다. 그만큼 오빠가 사람들에게 잘 했다는 뜻이기도 하겠지.


 결과를 들은지 2일째 되는 날은 오빠 생일이었다. 정신도 없고 상황도 이래서 제대로 못 챙겨준게 너무 미안하다. 케이크도 그냥 작은 치즈케이크를 사서 노래를 부르고 먹었고 정신 머리 없던 나는 생일인 것을 알면서도 왜 미역국이 아닌 콩나물국을 끊였는가. 정말 노이해. 지금도 모르겠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때의 나는. 그래도 오빠, 내가 많이 사랑하는거 알지?


 항암 치료를 하는 동안은 잘 먹는게 중요하고, 혹여나 발생하는 부작용이나 응급 상황의 발생이 우려되어 친정에서 보내기로 했다. 또한 매번 병원을 다닐 때마다 오빠가 회사를 빠질 수도 없는 상황이고, 오빠 역시 근무 중 나 혼자 있는 것에 대해 걱정이 되어 이와 같은 결정을 내렸다. 중간에 여건이 된다면 난 우리집에 한번씩 올 생각이지만 현재로서는 6개월 동안 친정집에 있어야겠구나 하고 있다. 그래서 토요일엔 시댁에도 얼굴을 보고 얘기를 나누는게 좋겠다고 판단되어 시댁에 갔고 일요일엔 친정에 왔다. 저녁을 먹고 오빠는 혼자 우리집으로 내려가고 난 친정에 남았다.


 이러한 결정으로 당분간 오빠와는 주말부부가 되었다. 친정에 오기 전 오빠와 미리 여러가지 얘기를 나눴다. 현재 재무 상태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어떻게 관리할지를 얘기했고, 11월에 있는 양가 친척의 결혼식은 둘 다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 계획에 대한 이야기도 마무리가 되었다. 기존에 잡았던 산부인과 예약은 취소했다.

 우선은 나의 치료가 우선이다. 후에 부작용으로 불임이 된다면 아이를 키우면서 소비될 예정이었던 그 돈으로 우리의 인생을 즐기기로 했고, 하늘이 아이를 준다면 열심히 키우기로 했다. 요즘 아기를 갖지 않는 딩크족이 많다. 그 딩크족들은 본인들이 그렇게 결정함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이 눈치를 주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는 항암의 부작용으로 인해 아기를 갖지 않는다고 해도 아무도 뭐라 그럴 수 없지 않은가. 이러나 저러나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이가 생기면 생기는 대로 좋은 것이고, 생기지 않는다면 눈치 줄 사람이 없으니 편하게 우리 인생을 즐기면 된다. 이런 우리의 생각을 부모님들은 이해해 주셨다. 서로 잘 얘기하면서 마음을 맞추고 결정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에 대해 오히려 존경심을 표하신다.


 친정에 와 있는 지금, 이제 병원을 잘 옮기고 이것저것 자료를 찾아 공부하면서 교수를 만나면 물어볼 리스트를 작성하며 시간을 보내야겠다. 이제부터 6개월이면 내년 초여름이다. 어떻게든 버텨내고 이겨내서 5년 뒤에 완치 판정을 받을 것이다. 이후에는 5년간의 습관을 유지하며 전보다 더 건강한 삶을 살 것이다. 

 미리 살을 찌워 놔서 항암을 하면서 살이 빠지더라도 보통 체중이 될 것이다. 그 힘든 다이어트를 이제 하는구나. 항암을 하는 동안 잘 먹어야 한다고 한다. 엄청난 식욕을 자랑하는 나이니 잘 먹을 것이다. 항암이 센지 내 식욕이 센지 이참에 알아보면 되겠다. 얼마나 좋은가,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찔 예정이라니.

 올 초에 보험을 싹 정리해서 다행이다. 덕분에 난 수입이 끊기고 치료를 하게 되지만 재무상으로는 마이너스가 되진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암 진단을 받으면서 납입면제가 되었으니 남은 19년치의 보험료는 내지 않아도 되어서 어찌보면 금액적으로 이익일지도 모른다. 열심히 공부하면서 보험을 정리하길 잘했다. 3대 진단금에 대해 열심히 공부했었는데 그걸 이렇게 직접 경험하게 되다니... 기분이 그렇다. 안받더라도 건강한게 가장 좋은건데... 보험을 혼자 공부하면서 세운 기준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 느낀다.


 31살 림프종 4기로 암 환자가 되었다. 이제부터 나의 투병 기록들을 적어갈 예정이다. 현재 진행 중인 모든 이들과는 서로 힘이 되길 바라고, 먼 훗날 발병한 이들에게는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내 스스로를 다잡기 위해서도 기록을 남긴다. 먼 미래에는 이 글들을 읽으면서 내가 이랬었지 라며 웃으면서 이 글을 읽는 날이 오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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